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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른살 시한부 일기 11
    서른살 홍미모 시한부 일기 2021. 2. 25. 06:17

    11. 우리는 안드로메다 우주를 여행하는 영혼들인걸

     

    오늘은 오후 2시에 일어났다.

    아주 푸욱 12시간 동안 내리 잤다.

    일어나서 딩굴딩굴 한 시간 동안 침대에 있었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유튜브에서 조로병으로 죽기 직전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는 어느 중년의 사연을 보았다.

    그는 전재산으로 세탁기를 사고 친구들에게 밥값을 내었으며 그리고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수소문해 요양병원으로 마지막 돈을 들고 찾아갔다. 근사한 양복과 꽃다발을 하나 들고.

    조로병 탓에 그의 어머니보다 늙은 껍데기를 하고 나타난 그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씨익 웃었다.

    그의 어머니는 용돈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쥐어주곤 떠났다.

    왜 저 모자는 평생 마음이 찢어지며 살아왔을까.

    그들 말고도 이토록 안타까운 일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그저 다들 어느 정도 편안한 삶을 보장해줄 순 없는 걸까.

    절대적으로 너무 큰 괴로움이 없는 세상은 없을까. 그냥 평균의 삶을 살아갈 수는 없을까.

    세상이 또다시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짧게 명상에 들어갔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나만의 세상으로 또 헤엄쳐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악독한 세상에서 나는 한번, 두 번, 세 번째의 삶을 살고 있다.

    전번의 삶에서는 꽤나 장수했기에 발란스를 맞추기 위해 나는 이번 생에서는 삼십 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그리고 이번 생에서는 또 무언가를 이루는 데에 실패했기에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다음 생에는 내가 아주 큰 궁궐 같은 집의 고명딸로 태어날 수도 있고,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집의 장녀로 태어나 가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철저한 계산 속에서 완벽하게 선택되는 것이므로

    어떤 환경에서 새롭게 태어난들 나는 불평할 수 없다.

     

    이번 생에서도 난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다.

    선행의 유무나 빈도가 아니라 나는 또 다른 차원의 깨달음이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라 생각한다.

    착하게 사는 것이 절대 나쁜 것이 아니고 손해 보는 일이 아니지만

    삶에서의 최종적인 관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이 우리를 만든 것이라면 선행을 하던지, 남을 도우라고 우리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만들어 놓은 아바타가 조금 더 개인 스스로가 최대한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게 재미가 있지 않을까.

     

    그 목표가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일단 단순하지는 않을 테다.

    아주 복잡하고 달성하는 데에는 엄청난 수련이 필요로 할 것이다.

    그리고 환경과 유전에 따라 달라질 문제도 아닐 테다.

     

    그게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

    그걸 알아내면 유레카! 인 것이고.

    아마도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에서 최종단계의 욕구인 자아실현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창조적인 활동 같은 것,,, 창조적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것 비슷한 게 아닐까.

    그것이 글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예체능에 국한된 게 아니라 어떤 형식으로든

    자아를 창조적으로 표출해 나가는 것이다. 돈으로도 나 자신을 표출할 수도 있겠지.

    춤으로 나의 자아를 마음껏 표출해낼 수도 있을 것이고, 말로서 심지어 공부로서도 말이다.

     

    이번 생에도 인간의 본능이듯이 무언가를 통해서 나의 자아를 어떠한 형태로 실현시켜보려 노력을 했었다.

    그게 나는 미술이었다. 하지만 어중간한 재능은 신이 주신 벌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나의 정말 조그마한 어중간한 재능은 엄청난 박탈감과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어중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재능이 있는 사람에 비해 오히려 노력을 더 하질 않는다. 왜냐면 자신도 자신의 능력이 어중간한 재능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노력을 해서 최대치의 결과물을 만들어도 천재를 이기지 못하는 걸 알기에 애초에 노력 자체를 하지 않아 버리는 거다. 그러면 핑곗거리 대기가 참 좋거든. 나는 재능은 있는데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어중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입문자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천재로 추앙받는다.

    처음에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두각을 보이게 되어 재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모두들 어느 정도의 재능을 갖춘 시기이므로 실력이 비등비등하게 된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르고 고인물에 들어가게 되면 어중간한 뜨내기들은 다 빠지게 되고

    진짜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 거기서부터 어중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지옥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아주 조그만 재능이 있다는 이유로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으나

    고인물에 들어오게 되면 진짜 천재들이 있다. 실력이 너무나도 우월해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진짜 천재들.

    진짜 천재를 직접 보게 된 어중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시름시름 알게 된다.

    그들을 이기려 노력을 해보아도 비교조차 되지 않는 사실을 깨달으면

    그때부터는 아예 노력도 하지 않고 포기해 버린다.

    일곱 살 때 구구단을 다 외워버려 세상에 이런 일에 출연한 꼬마 영재처럼.

    스무 살이 되고 나니 수능을 망쳐버린 나는 영재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나보다 잘난 사람, 진짜 영재, 천재들이 많다는 사실에 좌절해 버리는 그 아이처럼.

     

    어쨌든 나는 미술에서 핸들을 돌려 글로서 나의 자아를 실현시켜보려 하고 있다.

    바로 이 일기를 통해서.

    간간히 시를 쓰고 있기는 한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너무 부끄러운 수준이다.

    죽기 전까지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구인가 보다.

     

    어쨌든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완수했을 때에는

    나는 또 다른 별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구별을 떠나 안드로메다의 다른 별로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나는 거다.

    그렇게 우리의 영혼은 우주의 여행객으로 

    별에서 차원을 넘나들고 존재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내 몸의 아픔과 내 머릿속의 슬픔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진다.

    엄마와의 지독한 싸움과 남자 친구와의 다툼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게야.

     

    유한한 줄 알았던 나의 삶이 사실은 무한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에는

    나의 몸을 잠식하고 있던 우울과 슬픔 역시 아무것도 아니게 돼버리고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명상에서 깨어났다.

    가만히 오랫동안 앉아있으니 손발이 지릿해졌다.

    그럼에도 죽음은 아직도 두렵다.

    죽음은 두렵지 않은 거야.라고 자기 암시를 하며 오늘도 나를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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